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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축구(Calcio Italiano)/세리에A

Alessandro Nesta - 잃어버린 황금향(黃金鄕)



알레산드로 네스타는 20대 전반을 라치오의 반디에라로서 보냈다. 유럽을 석권한 비안코첼레스티의, 젊고 위대한 리더로서. 하지만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싼 금액으로 밀란에 매각되었고 ‘황금향’도 어이없이 소멸했다. 그 사건이 그 이후 10년의 네스타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가져다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Text by Roberto FUSARO


2000년, 라치오는 ‘북의 3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빅클럽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졌다. 그 결정타가 되었던 것이 99-00시즌의 스쿠데토 획득이다. ‘7공주’의 시대, ‘북의 3강’은 기복의 폭이 컸고 자주 중위권까지 추락했다. 그런 한편, 항상 상위를 유지했던 것은 칼치오의 신흥세력인 라치오였다.


당시 라치오는 자금력과 야심에 있어서는 다른 클럽을 압도했다. 몇 년 전까지의 첼시, 현재의 파리 생제르망 같은 상황을 상상했으면 한다. 돈에 대해 실눈을 뜨지 않고 후오리클라세를 사 모으며 ‘드림팀’이라는 타이틀을 독점하는 것을 노리는 팀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지만 돈에 의지해서 만든 팀은, 때로는 전력은 충실하더라도 팀으로서 하나가 되는 것이 부족해서 선전하더라도 타이틀에까지는 손이 미치지 못하며 끝나는 경우가 많다. 오일머니를 동료로 삼은 첼시가 그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실제로 빅타이틀을 차례대로 손에 넣었던 라치오는 다른 클럽과 한 획을 긋고 있다.


마르셀로 살라스,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마티아스 알메이다, 파벨 네드베드, 시니사 미하일로비치…월드클래스의 재능, 게다가 당시가 전성기였던 선수뿐이다. 그런 라치오에서 주장완장을 차고 팀의 결속력의 중심에 서있던 것이 알레산드로 네스타였다.


당시 라치오의 회상 세르지오 크라뇨티에게는 축구계의 정점에 선다는 큰 야심이 있었다. 식품회사의 사장인 그가『칠리오』의 브랜드를 세계로 넓히기 위한 광고탑으로 라치오를 매수했던 것이 92년. 하지만 칼치오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다는 야심은 해를 거듭할수록 커졌다.


그는 탁월한 기업가였다. 라치오를 상장시켜 주식시장에서 모인 자금으로 빅네임을 영입한다는 수법은 당시의 축구계에 있어서는 매우 참신했었다.「성공한 사람이 부의 상징으로 축구클럽을 소유한다」라는 개념이 아직 남아있었던 시대였다. 개인의 자산을 던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크라뇨티는 달랐다. 라치오가 유명선수를 영입해서 타이틀을 얻을 때마다 주가는 상승했고, 그것으로 새로운 자금이 생겨나며, 또 대형보강을 실시한다는 사이클이 기능했던 것이다.


확실히 현대의 연금술이라고 말해야겠지만 크라뇨티에게는 우수한 축구클럽의 회장이 가져야할 밸런스감각도 갖춰져 있었다. 전 세계에서 스타선수를 사 모으는 한편 지역출신이자 유스팀에서 배출해낸 네스타를 팀의 간판으로 내세웠다. 당시의 10번, 로베르토 만치니는 ‘미스터 삼프’라고 불렸던 삼프도리아 황금기의 절대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치니를 제쳐두고 크라뇨티는 ‘팀의 간판’으로서의 역할을 네스타에게 맡겼던 것이다.




99-00시즌은 완벽한 1년이 되었다. 지난 시즌에 컵 위너스컵을 제패했던 라치오는 시즌 개막을 알리는 UEFA슈퍼컵에 출전해서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격파. 그로부터 9개월 뒤 스쿠데토와 코파 이탈리아라는 2관을 손에 넣으며 시즌을 마쳤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라치오의 앞길에 불안을 안게 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축구계의 엘도라도(黃金鄕). 크라뇨티와 네스타의 라치오는 톱 클럽의 반열에 들어갔고 한층 더 성공을 쌓을 수 있을 거라고 비춰졌던 것이다.


그런 엘도라도가 붕괴의 첫걸음을 내딛었던 것은 2002년 8월 31일이었다. 네스타가 라치오를 떠나며 밀란의 일원이 되는 것이 확정된 날이다. 네스타의 이적설은 그가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던 시기부터 자주 부상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다른 빅클럽이 네스타의 영입을 위해 거액의 오퍼를 제시해도 크라뇨티에게 거절당했다」라는 것. 수비수에게 높은 가격표가 붙은 일은 거의 없지만 네스타는 예외였다. 이때의 보도를 돌아보면 2000년 봄부터 여름에 걸쳐 유베,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가 30억 엔을 넘는 빅 오퍼를 제시했다는 소식이 계속해서 나온다.

 

크라뇨티는 냉철한 기업가로서「라치오에 ‘비매품’은 없다. 어떤 선수라도 적절한 금액의 오퍼가 온다면 판다」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금력에서 다른 빅클럽을 압도하는 라치오에게 젊은 반디에라를 팔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2002년 여름의 메르카토 마지막 날, 네스타의 밀란 이적이 전격적으로 발표되었다. 이 날의 초간에 톱기사가 실리며 포르멜로(라치오의 연습장)에는 3천명의 팬이 모였다. 크라뇨티에 대한 항의와 네스타에게 잔류할 것을 간절히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네스타는 오전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포르멜로에 나타났지만, 그곳에서 이적에 관한 질문을 받자 밀라노로 가게 되었다. 모여든 라치알레에게는 네스타가 반디에라로서 던질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었고 훗날「클럽을 구하기 위해 이적한다」라는 메시지만이 발표되었다.

 

어째서 라치오는 네스타를 팔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크라뇨티도 네스타도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설명한 적은 없다. 돈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해 여름의 메르카토에서 라치오는 에르난 크레스포와 클라우디오 로페스의 영입에 큰돈을 투자했을 정도다. ‘용병’을 새롭게 고용하는 한편, 배출해낸 젊은 카피타노를 방출한 크라뇨티의 판단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크라뇨티의 연금술은 파탄 직전이었다. 원래 크라뇨티는 축구클럽의 회장도, 식품회사의 사장도 아니다. 기업매수로 부자가 된 M&A의 프로다. 하지만 10년에 걸쳐 확장을 계속했던 소유기업의 주가는 실질적인 경영규모보다 훨씬 고액이 되었다. 몇 년 뒤 그는 분식회계 및 위법적인 주가조작 죄로 구속되었고 사업계에서 모습을 감췄다.

 

크라뇨티의 엘도라도가 막다른 골목에 봉착했을 때 첫 희생이 되었던 것이 반디에라인 네스타였던 것은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네스타를 밀란에 양도한 것으로 라치오가 손에 넣은 이적료는 천만유로, 당시의 환율로 13억 엔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밀란, 라치오 모두 정식으로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액은 억측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진짜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싼 금액이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이 시절 정권을 잡은 지 1년이 지났기 때문에 강경노선이 성과를 거두며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궁지에 빠진 투자가와 공화국 총리의 사이에「정치적 거래가 있었다」라는 소문도 황당무계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이 ‘사건’이 알레산드로 네스타라는 한 사람의 인격에 매우 큰 영향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다. 쾌활한 소년은 말수가 적은 청년이 되었다. 개인으로서의 역할을 100% 이뤄낸 한편, 그것 이상의 무거운 짐을 등에 지려고하지 않는다. 밀란에서의 그가 팀을 대표할만한 형태로 발언을 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것은 라치오시절에 매사에 최선을 다했던 그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본디 세계적인 후오리클라세가 모이는 라커룸을 24세의 젊은이에게 통제하게 한다는 형태가 비정상적일지도 모른다. 네스타는 자신에게 최대의 신뢰를 부여한 크라뇨티에게 감사하는 한편 그의 인간성에는 큰 의심을 갖게 된 듯하다. 비즈니스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그다지 ‘스포츠 적이지 않은’ 운영방침이 그 원인으로 비춰지고 있다.

 

어쨌든, 그 이후의 10년 동안 네스타는 위대한 커리어를 쌓아올렸다. 2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월드컵 우승이라는 타이틀 이상으로 그의 우아하고 두뇌적인 수비기술은 보는 사람에게 감명만을 가져다줬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는 20대 전반에 그 스스로가 상상했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

 

알레산드로 네스타는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커리어를 바꿨던 라치오를 떠난 소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어도 은퇴 이후에는 말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