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탈리아 축구(Calcio Italiano)/세리에A

칼치오의 전도사들


Text by Gianni MURA

유로2012에는 3인의 이탈리아인 감독이 참가한다. 나이는 들었어도 머리는 녹슬지 않은 지오바니 트라파토니. 누구보다도 활기가 넘치는 파비오 카펠로. 현저한 약진과 그런 한편으로 깊은 품격이 느껴지는 체사레 프란델리. 3명 모두 유벤투스에 적(籍)을 뒀던 적이 있는 이탈리안 스타일의 산물이다. 이탈리아인이기 때문에 ‘이탈리아류’의 축구를 한다고는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아리고 사키는 확실히 이탈리아인이었지만 그의 플레이스타일은 전형적인 이탈리안 스타일과는 선을 그어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3명은 모두 각자의 형태로 이탈리아축구를 체현하고 있다.

3명의 이탈리아인이 유베에서 지휘봉을 잡은 것은 이탈리아의 전술레벨, 지도자의 레벨의 높음을 무엇보다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카를로 안첼로티는 가까운 시일 내에 잉글랜드나 프랑스의 빅클럽의 감독으로 취임할 것이고 루치아노 스팔레티는 러시아리그를 지배하고 있다. 로베르토 만치니는 프리미어리그를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어 왔던 ‘빅4’의 세력구도를 바꾸고 있다. 그리고 알베르토 자케로니는 일본대표를 한 단계 위의 팀으로 끌어올렸다.

전술대국 이탈리아의 감독이 초빙 받아 외국으로 나가는 사례는 많다. 과거에는 이탈리아인 감독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국내에서 만족할만한 일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이유였다. 혹은 미지의 축구에 도전하는 스릴을 맛보거나 타국의 문화를 접해보고 싶다는 동기가 있었다. 중국으로 건너간 쥐세페 마테라찌처럼 축구 후진국으로 불리는 타국에서 개척자가 되려고 했던 사람도 있다. 혹은 왈테르 젱가처럼 어려운 환경에 자신의 몸을 던져 수행하려고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개성적이고 우수한 재능을 묶어 하나의 콘셉트 아래 팀을 만들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다. 그것이 가능한 감독으로서 이탈리아인 감독이 각국에 선택받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국내에서 모든 성공을 거둔 트라파토니는 90년대에 바이에른의 감독으로서 새로운 모험을 시도했고 분데스리가에서 성공을 거둔 뒤 포르투갈과 오스트리아 국내리그를 제패, 아일랜드대표감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그리고 올해 그는 아일랜드에게 24년만의 유로 본선진출을 선물했지만 티에리 앙리의 확실한 핸드볼을 심판이 보지 못했다는 전대미문의 오심이 없었다면 그가 이끄는 아일랜드대표는 남아공월드컵 본선에 출전했었을 것이다.

트랍은 1939년생. 72세가 되었다. 현역시절에는 수비수였지만 그때의 축구에서는 마크하는 상대가 결정되어있었고 시합개시부터 종료까지 쭉 그 선수에게 찰싹 달라붙는 것이 임무였다. 그가 현역선수로 살아왔던 축구계에서는 인터넷과 휴대전화 같은 건 물론 없었고 에이전트조차 없었다. 선수와 감독과의 관계가 지금보다 직접적이고 훨씬 간단했던 축구를 아는 트랍이지만 그는 시대의 흐름에 적응할 정도의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다.

돈도 명예도 충분할 것이다. 그런 그의 모티베이션은 단 하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이 있다면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것은 확실히 축구에 대한 정열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역시 그의 풍모는 연륜을 느끼게 한다. 아주리를 이끌었던 10년 전보다도 주름이 늘었고 공원에서 작은 손자와 공을 차고 있는 할아버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지도하고 있는 팀은 노련한 대표팀이다. 아일랜드는 재능이 풍족한 국가는 아니지만 그는 옛것이 낫다는 축구의 정신이 남아있는 대표팀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고, 또한 자기 자신도 계속 단련하고 있다. ‘축구인’의 늘그막으로 트랍의 그것만큼 충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먼 옛날,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이탈리아가 처음으로 잉글랜드를 눌렀던 역사적인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남자가 30여년 뒤에 그 잉글랜드대표를 이끌게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카펠로도 트랍에게 뒤처지지 않는 풍부한 경험과 실적을 자랑하는 감독이다. 하지만 본선대회출전을 확정지은 시점에서 목표달성이 된 트랍과는 달리 카펠로의 일은 이제부터가 어렵다. 오일머니로 가득한 프리미어리그의 빅클럽은 전통적인 잉글랜드축구와는 이미 무관해졌다. 리그 자체는 확실히 성황이지만 그곳에서 주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의 대부분은 외국인선수다. 이것은 대표팀을 이끄는 카펠로에게 있어서 절실한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축구의 종주국이기 때문에 어떤 대회에서든 우승할 수 있다”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남아공월드컵에서는 독일에게 패하며 16강 탈락. 이 결과는 그들을 만족시키는 데는 너무나도 먼 결과였다. 비판은 결코 적지 않았지만 카펠로가 해임되는 일은 없었다. 그 이유는 잉글랜드인에게 카펠로보다 적임이라고 생각되는 감독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펠로는 밀란, 유베, 로마,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빅클럽의 프라이드가 높은 선수들을 가르칠 정도의 위엄과 통솔력을 갖추고 있다. 지금 잉글랜드대표는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강한 순풍이 되어줄 것이다.


3명중에서 최연소인 프란델리는 발언의 신중함에서 때로는 가장 선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성격의 기본이 되는 것은 겸허함이며 그의 발장의 기반이 되는 것은 그룹으로서 일하는 의욕이다. 그는 도덕이라던가 매너를 매우 중시한다. 이것은 대표팀을 이끄는데 있어 꽤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현역시절 트라파토니와 카펠로가 이탈리아대표에서도 주력 급의 캄피오네였던것에 반해 프란델리는 큰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성실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그룹이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항상 주변에 신경을 쓰는 타입의 남자였다. 교만한 적도 없고 항상 겸손해하는 성격은 그의 플레이스타일에도 나타나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소극적인 남자는 아니다. 끈기라는 점에 관해 프란델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약간 축구에서 이탈해버렸지만 최근 뭔가 도덕의 저하가 눈에 띄는 이탈리아에서 대표감독의 자리에 프란델리 같은 겸손하고 확실한 남자가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안토니오 카사노와 마리오 발로텔리같은 ‘악동’ 모두를 정면에서 마주보고 그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불만을 들은 뒤에 대표를 위해 플레이하도록 한다. 급한 성미의 트랍과 카펠로라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프란델리의 축구관은 지오바니 할아버지와 파비오 숙부의 그것과는 꽤 차이가 있다. 그는 ‘이탈리아류’의 기본에 스페인축구의 양념을 곁들였다. 지금 프란델리의 간맞추기는 꽤 효과를 보고 있다. 이탈리아요리의 좋은 소재가 스페인의 양념으로 한층 두드러졌다는 인상인 것이다.

◇◇◇◇◇◇◇◇◇◇◇◇◇◇◇◇◇◇◇◇◇◇◇◇◇◇◇◇◇◇◇◇◇◇◇◇◇◇◇◇◇◇◇◇◇◇◇◇◇◇◇◇◇◇◇◇◇◇◇◇◇◇◇◇◇◇◇◇◇◇◇◇

마지막으로 누구나 안고있을법한 의문에 대해 다뤄보고자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이탈리아축구는 클럽레벨에서는 스페인과 잉글랜드의 축구에 압도당하고 있다. 이탈리아축구의 붕괴를 언급하는 사람까지 있다. 하지만 유로 본선의 출발선에는 3명의 이탈리아인 감독이 서있고 그 이외에도 세계에서 활약하는 이탈리아인 감독은 다수 존재한다. 그럼,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우수한 감독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그 나라의 축구레벨을 높이기위한 필수요소다. 우수한 지도자가 부족하지 않은 이탈리아축구는 반드시 유럽의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출처 : 칼치오2002 2012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