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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전술 칼럼

Demetrio Albertini intellectual column -『이상적 축구 고찰』


유럽무대에서 보는 센터하프의 변천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로 말하자면, 모든 타이틀을 손에 넣었던 90년대 "그란데 밀란"에서의 씩씩한 모습이 생각납니다.
흘러넘치는 아이디어를 계속 공급하던 희대의 레지스타에게 현대축구는 어떻게 비춰지고있을지.
이번달부터 매월 1번 독자적인 단면으로 고찰받았습니다.

Interview by Cristiano RUIU


카펠로정권하의 밀란이 시작되다

연재의 첫번째는『챔피언스리그로 보는 센터하프의 변천』이라는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고싶습니다. 저자신이 현역시절에 센터하프 포지션의 선수였었던것도 있어서 이번에는 이 포지션에 초점을 두고 승리하는 팀의 경향을 찾아보려고 생각합니다. 센터하프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시대와 함께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우선은 시작지점을 정하고싶습니다만 예를들면 70년대를 시작으로하는것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축구의 본질 그 자체가 다르기때문입니다. 변화의 시작과 위치로 잡아야할 시대는 현대축구와의 비교에 견딜수있는, 오늘날과 공통되는 기술면에서의 철학을 가진 시대가 아니면 안될것입니다. 그렇다고한다면 시작은 90년대중기가 될것입니다. 다름아닌 제가 선수로서 전성기였던 시대를 기본으로 현재 계속 변화를 보이고있는것을 다루고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리고 사키의 혁명기(87년)과 비교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는 다릅니다. 사키의 출현으로 축구가 보다 변했습니다.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생각컨데 보다 중요한점은『그 직후』에 있는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즉, 파비오 카펠로의 밀란에서 본 중반의 구성이 그것입니다. 밀란출신의 제가 말하는 이상 아무래도 구체적인 예가 이 팀으로 기우는점은 용서해주시기바랍니다.

팀의 중반에서 체르니에라(경첩의 의미 : 경첩은 문을 지탱하며 개폐를 가능하게하는 금속도구. 본문에서는 바꿔서 중반을 지탱하는 사람)의 역할을 맡았던 마르셀 드사이의 존재야말로 오늘날 중반의 특성을 낳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키 이전의 이탈리아에서는 센터하프라고 한다면 인테르디토레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1) 수비편중의 개념을 사키는『인테르디토레+메디아노(※2)』을 조합시킨것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보다 공격에 비중을 둔 형태를 창작한것입니다. 드사이라고하는 진짜 수비수를 중반의 아래에 배치하며 사키의 4-4-2에 새로운 해석을 덧붙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4-1-1-2-2라고도 말할수있을까요. 중반의 1-1의 전자가 드사이이고 후자가 접니다. 전자는 게임메이크를 일설 행하지않는 미드필더이며 수비에 모든 힘을 쏟아붓습니다. 최종라인을 보호하는 필터로서 기능하며 그 옆에는 저 또한 의식의 50퍼센트이상은 수비에 할애했습니다. 물론 숫자의 배열『1-1』에서 연상될만한 배열방식은 없습니다. 두사람의 거리는 언제나 가깝고 가로가 아닌 세로,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항상 비스듬하게서서 일정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이렇게해서 당시의 밀란은 철벽의 수비를 구축했습니다. 94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요한 크라이프가 이끄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4-0으로 쾌승을 거뒀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있는걸까요. 이 사실을 잊지말고 기억했으면합니다. 어디까지나 중반의 조직력으로 적의 공격을 봉인하고 주도권을 잡았던것입니다. 이런 밀란의 플레이방식이 훗날 유럽 전역까지 침투해나가게됩니다.


만능형이 아니면 살아남을수없다

그렇다고한다면 승리하는 팀의 경향도 필연적으로 드러나는건 아닐까요. 말할필요도없이 중반의 수비력이 승패를 결정합니다. 그렇기때문에 각 클럽은 제각각 다양항 형태를 시험해서 가장 적합한 형태를 찾길 원하는것입니다. FW 또는 DF가 아닌 어디까지나 MF를 기본으로 시스템의 변경이 이뤄지고있는것도 그때문입니다. 시행착오가 반복되어왔던것은 당연한 일일것입니다. 예를들면, 드사이같은 타입의 선수는 모습을 감췄고 반대로 인테르디토레적인 선수라고하더라도 최종라인 앞에 계속 눌러앉는 플레이는 요구받지않게되었습니다. 어휘 그 자체도 변하게되었습니다. 수비적인 자질은 물론, 메디아노적인 힘을 겸비한 미드필더를 일반적으로 인테르디토레라고 부르게되었습니다.

(젠나로)가투소의 성장이 그 제일가는 변화라고 말할수있을것입니다. 현재 그는 단순히 적을 부수는것만이 아닙니다. 그 본래의 특색이 흐려지는일없이 동시에『연결하는 역할』의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그렇지않았다면 (안드레아)피를로의 성공은 없었을것입니다. 한명은 100퍼센트 수비. 또한명은 100퍼센트 게임메이크라고하는 분담같은건 불가능합니다. 레지스타로서 보기드문 재능을 가진 피를로라고하더라도 수비의 부담은 서로 부담하지않으면안됩니다. 확실히 2001년이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레지스타로 포지션을 전환한 이후 항상 수비력의 향상을 요구받아왔던것은 그때문입니다. 피를로는 기대에 부응했고 디아고나레(※3)의 닫힌방식은 이전과 비교하면 없어졌습니다. 가투소와 피를로가 기능하면 (클라렌세) 시도르프도 살아납니다. 3명의 센터하프가 기능하면 당연히 카카에게 볼 공급량은 현격히 늘어날것입니다. 공을 받는 카카는 측면으로 전개, 혹은 공격수들에게 어시스트, 혹은 카카 자신이 드리블돌파한다는 항시 3개의 공격패턴을 확보하게됩니다. 팀내에서 공수양면에 있어 기능성, 또는 보완성은 3명의 센터하프의 안정과 연계가 열쇠를 쥐고있는것입니다.



바르셀로나 부진의 요인, 문제는 중반의 조합

지난시즌 바르셀로나의 강력함 또한 스페인어로 말하자면『피보테』의 안정에 집약되어있기때문이 아닐까요. 돌출된 개인의 힘을 전선, 혹은 트레콰르티스타에게 줄경우 그들이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현대축구에서는 지극히 드뭅니다. 미드필더의 서포트없이 천재들은 힘을 발휘할수없습니다. 한명의 천재를 억누르는 기술은 이미 현대축구의 수비진이라면 습득하고있을것입니다. 이번시즌 바르셀로나의 전술을 보더라도 그것은 알수있을것입니다.

바르샤 부진의 이유에 사무엘 에투의 부재를 거론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왜냐하면『호나우지뉴와 메시가 살지못한다』라는 대답을 준비하고있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전선에서 과감하게 압박을 행하는 에투의 부재는 어디까지나 중반의 수비부담을 증가시키는으로 연결됩니다. 이곳에서의 변화가 호나우지뉴 이하 전체의 시스템에 서서히 균열을 만들어냈던것입니다. 게다가 경첩이 떨어진 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여는(공격하는)것도 불가능하고 또한 닫는(수비하는)것도 불가능하다는것입니다.

지난시즌의 압도적인 강력함이 자만을 불러일으킨것은 아닐까요. (지안루카) 잠브로타와 (릴리앙) 튀랑의 입단으로인해 수비에 대한 준비가 거기서 끝나버렸다고도 해석할수있습니다. 공수를 연결하는 축, 중반(역삼각형)의 정점에 적임자가 없는 이번시즌은 안정감이 결여되었습니다. 친구 (프랑크) 라이카르트는 결코 소홀히한것은 아닐것입니다. 아니, 어떤 퍼즐조각을 끼워넣어야할지 고민했을것입니다. 최종라인의 질이 높았다고는해도 여기서는 끝까지 지켜낼수없는 장면이 빈발하더라도 당연한 일입니다. 중반에 있어서 공수밸런스가 틀림없이 누락되어있습니다. 기세로 공격해들어가는 경우는 좋지만 준비없이 볼을 빼앗겼을때 영리한 선수가 없다라는 파탄은 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라는 팀은 특별하며 수비가 능숙해도 칭찬받는일은 없습니다. 저 스스로도 경험했습니다. 자주『극단적으로 수비적이다』라며 거친 비판을 받았던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서도 지키지않고 공격해나가, 라고 말하는것일겁니다. 한명의 수비수를 중반에 배치하는건 그들의 사전에는 없을것입니다. 공격이야말라고 축구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확실히 하나의 철학으로서는 이해할수있고 존중도 합니다. 하지만 부서진 경첩의 수복없이 유럽에서는 승리할수없습니다. 그것이 사실인것입니다.

 드사이가 만든 노선위에 오늘날의 유럽축구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재차 다시 살펴보면 인테르디토레 타입의 선수는 챔피언스리그를 치르는데있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점에서 이번시즌 레알이 안고있었던 문제는 실로 대조적이었습니다. 극단적으로 공격적인게 아니라 카펠로스럽게 과도할정도까지 수비적이었습니다. 에메르손과 마마두 디아라로 이뤄진 중반의 구성은 팀에게서 창조성을 빼앗아버렸습니다. 당연히 그 스타일이 스페인에서 받아들여질리없었고 카펠로는 에메르손을 제외하고 레지스타 페르난도 가고를 투입했습니다. 과거 우리가 완성시켰던 형태의 『인테르디토레 1장』으로 회복시킬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공수밸런스가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같은 논리는 향후의 인테르에게도 적합할것입니다. (파트릭) 비에이라, (에스테반) 캄비아소, 하비에르 사네티로 구성된 3명의 중앙미드필더는 구성해서는 안됩니다. 수비에 중점을 둔 중원으로는 이길수없습니다. 이것이 철칙인 이상 중앙에 데얀 스탄코비치를 배치하고 FW의 등뒤에 피구를 두는 4-3-1-2가 베스트입니다.



뉴타입의 출현으로 새로운 가능성이 보였다

밀란시절의 이야기로 돌아가고싶습니다. 밀란이 유럽을 제패했던 94년 당시 뭐라고 말해야하려나, 팀 내부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기운같은게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수비진과 공격진 사이에 서서 양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우리들이 맡았습니다. 두대의 차량을 연결하기위한 튼튼한 축이 드사이라고한다면, 그곳에 필요한 윤활유를 제가 주입해서 마모를 경감시켜 결과적으로 높은 내구성을 만들어냈던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팀은 유럽을 제패할 힘을 얻을수있었습니다. 이후 이것이 중반에 요구되는 역할로 확립되었고 많은 클럽이 그 흐름에 동참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이 조류속에서 미드필더가 갖춰야할 기술은 정확도를 높임과 동시에 그 수를 현격히 늘려가게되었습니다. 스티븐 제라드(리버풀)과 다니엘레 데 로시(로마)같은 선수가 그 상징이며 그들의 완성도는 실로 높습니다. 이건 틀림없이 진화라고 부를수있을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메쫄라(트레콰르티스타와 세컨톱으로서 자질을 겸비한 선수)의 감소라고하는 상황을 낳은것도 사실입니다.

 현대축구에서 볼수있는 문제는 이점으로 끝나는게 아닐까요. 수비 임무는 일절 요구받지않고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만으로 플레이가 허용되는 선수는 극히 적습니다. 저도 메쫄라가 아니었던 선수중 한명입니다. 94년 당시의 밀란 이전에 저는 틀림없이 메쫄라, 때로는 트레콰르티스타로 플레이하는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제게 메디아노로 포지션을 바꿀것을 요구했습니다. 솔직히 지금 이렇게 돌아보더라도『좀더 골에 가까운 공간에서 승부하는것이 허락되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현대의 완성된 MF가 그들의 달라진 진화가 언젠가 다시 메쫄라의 부활을 낳는 흐름이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느끼고있습니다.

 지금의 이탈리아로 말하자면 알레산드로 로시나와 파스콸레 포지아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젊은 재능을 긍정하는 축구가 향후 유럽전체에서 주류가 되는것을 강하게 원하고있습니다.『극한까지 완성도를 높인 메디아노+메쫄라』. 이 새로운 조합은 지금보다도 현격히 높은 스펙터클을 약속할것입니다.



※1. 인테르디토레

『저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 인콘트리스타라고도 부르며 대전상대의 볼 홀더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많기때문에 사용되게되었습니다. 공격에는 거의 가담하지않는『볼탈취 전문가』를 가리킵니다.

※2. 메디아노

『정중앙의 사람』이라는 의미. 원래는 중반의 아래에서 계속 움직이는 수비전문으로 활용되었지만 역할의 세분화에 따라 의미도 크게 변화. 현재는 공수에게 요구되는 모든 요소를 겸비한 타입으로 사용됩니다.

※3. 디아고나레

대각선의 의미. 수비에서의 국면, 상대 볼 보유자에게 가장 가까운 선수의 위치를 기점으로하며 그점과 골을 연결하는 선상에 복수의 선수가 배치. 비스듬하게 라인을 형성하는것으로 뒷공간을 빼앗길 확률을 낮추며 보다 효율적으로 공간을 없앱니다. 볼이 이동하는것에 따라 기점도 이동하기때문에 확실히 시시각각으로 디아고나레는 변화합니다. 따라서 포진 전체를 콤팩트하게 유지하는것이 기본이 되며 그곳에 선수 개개의 높은 운동능력, 다음 전개를 읽어내는 눈(높은 전술안)이 요구됩니다.

※4. 메쫄라

현대에서 예를 든다면 트레콰르티스타에 보다 가까운 타입. 탁월한 테크닉과 풍부한 창조성을 가진, 또 공격적 자질을 겸비한 중반의 선수에게 사용합니다.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1971년 8월 23일, 이탈리아 밀라노 출생. 17세때 밀란의 유스팀에 입단했고 즉시 그 재능을 개화시켰습니다.『지아니 리베라의 재림』이라고 불렸을정도로 평가가 높았고 18세때 세리에A 데뷔를 장식했습니다(89년 1월 15일 코모전). 91-92시즌부터 리그 3연패, 2번의 챔피언스컵에 공헌하며 부동의 멤버로. 커리어 말년에는 스페인의 아틀레티코(2002-03), 라치오(2003-04), 아탈란타(2004-05), 바르셀로나(스페인/2004-06)으로 많은 클럽을 옮겨다녔습니다. 대표 데뷔는 91년 12월 21일 키프로스전. 대표통산 79경기 2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