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선수가 반드시 유명감독이 되지는 않는다'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선수로서는 80년대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보란치이자 감독으로서도 2번이나되는 유럽의 정점을 거친 카를로 안첼로티는 그 가운데서도 적은 사례의 한명이다.
80년대후반 압박축구로 혁명을 일으켰던 아리고 사키감독의 밀란에서는 미드필더에서 공수를 조절하는 ‘피치위의 감독’이었다. 이탈리아대표 경력은 26경기 1골. 2번에 걸친 무릎인대손상이라는 큰 부상이 찾아오는 불운이 없었더라면 이 수치는 배 이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은퇴 이후에는 이탈리아대표감독으로 소속을 옮긴 스승 사키의 한팔을 3년동안 맡은 뒤‘독립’. 데뷔 2년차에는 이미 파르마를 이끌며 세리에A 2위라는 더할나위없는 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커리어는 순조로웠던것만은 아니었다. 1999년 불과 4년만에 명문 유벤투스의 감독으로 발탁되었지만 2시즌 연속으로 막판에 라치오, 로마에게 타이틀을 빼앗기며 2위에 그쳤다. 계약연장에 사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종료후에 해임이라는 쓰라린 체험을 맛보며 ‘우승을 놓친 남자’, ‘영원한 패배자’라는 딱지가 붙게되었다.
필자가 처음으로 그와 인터뷰를 하고 ‘월드사커다이제스트’지에서의 연재기획을 시작했던 것은 유벤투스를 떠나 ‘방랑중’이었던 2001년 9월이다. 그 이후 쉴 겨를도 없이 같은해 11월에 밀란의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2번의 챔피언스리그 제패를 시작으로 많은 타이틀을 얻으며 과거의 딱지를 떼고 유럽에서 손꼽히는 명장으로서의 평가를 확립한 재임 8년간의 족적은 본문속에서 만끽하신대로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이 책의 기본이 되었던 연재기획을 위해 했었던 인터뷰는 40회를 넘는다. 그 대다수는 밀라넬로(밀란의 트레이닝센터)의 응접실에 있는 쾌적한 소파에서, 때로는 전화로, 그리고 몇 번정도는 파르마 근교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했었다.
1번의 취재는 3분전후. 차분한 말투로 뜨겁게, 그리고 명석하고 간단하게 핵심에 도달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질문을 계속하며 주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나가던 시간은 당시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자극적이고 발견으로 가득찬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의 축구관의 대부분은 이 대화를 통해 만들어졌다고해도 좋다.
8년에 걸친 정기적인 취재를 계속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아직 이 위대한 감독의 전모에 도달했다는 실감을 갖지 못하고 있다. 언제 어느때든 마치 부처님의 손위에 올려져있다고 말해야할지, 퍼담으려해도 끝을 알 수 없는 샘을 앞에두고 어쩔줄 몰라하는 것 같은 감각이 있다. 그것은 축구라는 스포츠/게임의 심오함, 그리고 그것 이상으로 카를로 안첼로티의 인간성에 의한것일 것이다.
이번 서적화에 있어서는 안첼로티의 승인을 받아 연재의 내용을 재구성해서 시제를 현재로 통일하는 형태로 가필·수정을 거쳤다. 물론 그것을 위해 필요한 업데이트도 본인을 대상으로했던 취재에 기초한 것이지만 최종적인 문책은 모두 카타노에게 있다는 것을 명기해둔다.
끝으로 서적화를 쾌히 승낙해준 일본스포츠기획출판사의 다케야 유지(竹谷勇二)회장. 다케야 ?(竹谷銳)사장, 연재개시때부터 이 기획을 지지해줬던 “월드사커다이제스트”의 테시마 마사히코(手嶋真彦)편집장, 본서간행에 있어 신세를 졌던 업루시드 에이전시의 미야하라 요스케(宮原陽介)씨, 그리고 편집담당의 카와이데쇼보신사·반조 쿄고씨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싶다. 정말 감사합니다.
2010년 3월 카타노 미치오(片野道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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