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스텐, 최후의 쇼
카르쵸의 긴 역사가운데는, 여러가지 기록과 기억이 잠들어있습니다.
현재의 카르쵸를 좀 더 잘 이해하기위해, 카르쵸의 기억을 상기시켜봅시다.
Text by Nicola CALZARETTA
1992년 11월 8일, "유트레흐트의 백조"(마르코 반 바스텐의 별명)은 나폴리에서 그 화려한 날개를 펼쳤습니다. 그때까지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의 천재적 볼터치와 오마르 시보리의 말년의 플레이를 보며 기쁨을 누려왔던 나폴리의 티포지들은, 나폴리의 선수들을 조연으로 만들어버린 반 바스텐의 원맨쇼를 눈으로 직접 보았던것입니다.
반 바스텐은 연달아 4골을 넣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최초의 포케르(1경기 4골)은, FK 및 PK를 포함하지않았고, 모두 경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넣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반 바스텐은 몇번인가 트리플레타를 기록했었지만, 포케르는 이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요한 크루이프의 후계자라고 말할 수 있는 그가, 그 득점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떤 시합이었습니다. 그는, 전성기의 크루이프를 방불케하는 우아하며 가벼운 움직임,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으로, 적지 스타디오 산 파울로의 팬들마저도 매료시켰던 것입니다.
반 바스텐은 확실히 후계가자 되어야할 선수였습니다. 64년 10월 31일 위트레흐트에서 태어난 그는, 82년 4월 4일, 네덜란드리그의 NEC전에서 크루이프를 대신해 피치에 섰으며, 톱팀에서의 데뷔를 이루게되었씁니다. 이미 모든 타이틀과 명예를 손에 넣었던 35세의 카리스마는, 암스테르담의 유스팀에서 육성된 17세의 신인스트라이커와 피치사이드에서 가볍게 악수를 나눴습니다. 그 시합의 종료직전, 반 바스텐은 스스로 골을 넣으며 데뷔전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반 바스텐은 아약스에 많은 승리를 가져다준후, 새로운 레벨업을 목표로하며, 세리에A에서 활약할 기회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밀란에서 모든 타이틀을 손에 넣음과 동시에, 밀라니스타들의 인기를 독점하게되었던것입니다. 반 바스텐은 강력한 슛을 상대의 골문에 꽃아넣었지만, 그의 골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주 예상하지 못한 트릭적인 슛을 넣었고, 밀라니스타를 광희시켰던것입니다.
반 바스텐은 진정한 스트라이커였던것입니다. 익숙한 발은 오른발이었지만, 왼발로도 어렵지않게 골을 넣었습니다. 다채로운 슛테크닉의 소유자였으며,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크로스에 맞추는것은 물론, 긴 거리에서의 드리블로도 골을 넣으며, 좁은 공간을 원투로 돌파하며 골을 넣는것도 가능했습니다. 또, 파워풀한 스트라이커이기도했으며, 공중전에서 상대DF와의 경합에서 밀리지않는 점프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 정신력에서도 터프하며 압박이 걸릴만한 장면의 PK도 어렵지않게 골로 연결했던 것입니다.
어떠한 형태에서도 골을 넣은 완벽한 스트라이커였던 반 바스텐에게 제동을 걸었던것은 부상뿐이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결함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리몸"은, 절정기였던 이 시기에 있어서도 불안감을 안겨주었던것입니다. 「혹시 그는 젊은나이에 축구인생의 막을 내리는것이 아닐까」라고하는 어두운 예감에 사로잡혔던 사람은 결코 적지 않았던것입니다.
그러한가운데, 그는 밀란에서의 6번째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개막부터 최고의 컨디션으로, 8라운드까지 8골을 넣었습니다. 2라운드 페스카라전, 밀란은 격이 낮은 상대에게 한때는 1-4로 리드당했지만, 반 바스텐의 해트트릭으로 역전승을 손에 넣었습니다. 반 바스텐은, 다음주에 열린 아탈란타전에서도 골을 넣으며, 계속해서 피오렌티나 원정에서 도피에타, 한층 더 6라운드 라치오전에서는 2개의 PK를 넣으며 밀란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던것입니다. 에이스가 최고의 컨디션을 보이며, 밀란을 2년째 지휘하고있었던 파비오 카펠로감독은, 아리고 사키시절의 전술에 묶여있던 축구에서, 창조성이 넘치는 축구로의 이행을 도모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밀란이 탄생했던 이날, 밀란은 원정에서 나폴리와 대전했던것입니다.
나폴리는 밀란에게 있어서 결코 유쾌한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고전을 예감했던 이유는 3가지입니다. 아직은 나폴리와의 상대전적이 좋지못했다고하는것, 마라도나가 없더라도 나폴리에는 고전의식이 남아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시점에서 밀란은 2위 인테르와 토리노에게 4포인트차를 벌리며 선수에 있었지만, 지난주 산 시로에서의 토리노전을 0-0의 무승부로 마쳤다고하는 좋지못한 흐름으로 끌고갔던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카펠로가 가장 두려워했던것은 나폴리의 모티베이션이었습니다. 나폴리는 이 시점에서 최하위 경쟁을 펼치고 있었던것입니다. 마라도나로 상징되었던 황금기는 종언을 고했고, 이 시즌의 나폴리는 최악의 출발선을 끊었던것입니다. 팬들의 분노는 정점에 도달해있었으며, 그 비판의 화살은, 개막이전에 팀의 주력인 디 나폴리와 알레안을 방출했던 페르라이노 회장을 향해있었습니다. 2명을 대신해서 영입한 스웨덴 MF 테르소와 우루과이 FW 폰세카가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대부분 기능하지못했다고하는것이, 커다란 불만이 되었던것입니다.
물론,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감독도 나폴리팬들의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시즌초반, 그의 전술은 전혀 기능하지못했던것입니다. 라니에리는 중앙MF였던 파리를 리베로에 배치하고, 마시모 마우로를 사령탑으로 발탁했지만, 이 변화는 팀을 혼란시켰을 뿐이었습니다.
카르쵸의 긴 역사가운데는, 여러가지 기록과 기억이 잠들어있습니다.
현재의 카르쵸를 좀 더 잘 이해하기위해, 카르쵸의 기억을 상기시켜봅시다.
Text by Nicola CALZARETTA
1992년 11월 8일, "유트레흐트의 백조"(마르코 반 바스텐의 별명)은 나폴리에서 그 화려한 날개를 펼쳤습니다. 그때까지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의 천재적 볼터치와 오마르 시보리의 말년의 플레이를 보며 기쁨을 누려왔던 나폴리의 티포지들은, 나폴리의 선수들을 조연으로 만들어버린 반 바스텐의 원맨쇼를 눈으로 직접 보았던것입니다.
반 바스텐은 연달아 4골을 넣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최초의 포케르(1경기 4골)은, FK 및 PK를 포함하지않았고, 모두 경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넣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반 바스텐은 몇번인가 트리플레타를 기록했었지만, 포케르는 이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요한 크루이프의 후계자라고 말할 수 있는 그가, 그 득점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떤 시합이었습니다. 그는, 전성기의 크루이프를 방불케하는 우아하며 가벼운 움직임,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으로, 적지 스타디오 산 파울로의 팬들마저도 매료시켰던 것입니다.
반 바스텐은 확실히 후계가자 되어야할 선수였습니다. 64년 10월 31일 위트레흐트에서 태어난 그는, 82년 4월 4일, 네덜란드리그의 NEC전에서 크루이프를 대신해 피치에 섰으며, 톱팀에서의 데뷔를 이루게되었씁니다. 이미 모든 타이틀과 명예를 손에 넣었던 35세의 카리스마는, 암스테르담의 유스팀에서 육성된 17세의 신인스트라이커와 피치사이드에서 가볍게 악수를 나눴습니다. 그 시합의 종료직전, 반 바스텐은 스스로 골을 넣으며 데뷔전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반 바스텐은 아약스에 많은 승리를 가져다준후, 새로운 레벨업을 목표로하며, 세리에A에서 활약할 기회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밀란에서 모든 타이틀을 손에 넣음과 동시에, 밀라니스타들의 인기를 독점하게되었던것입니다. 반 바스텐은 강력한 슛을 상대의 골문에 꽃아넣었지만, 그의 골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주 예상하지 못한 트릭적인 슛을 넣었고, 밀라니스타를 광희시켰던것입니다.
반 바스텐은 진정한 스트라이커였던것입니다. 익숙한 발은 오른발이었지만, 왼발로도 어렵지않게 골을 넣었습니다. 다채로운 슛테크닉의 소유자였으며,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크로스에 맞추는것은 물론, 긴 거리에서의 드리블로도 골을 넣으며, 좁은 공간을 원투로 돌파하며 골을 넣는것도 가능했습니다. 또, 파워풀한 스트라이커이기도했으며, 공중전에서 상대DF와의 경합에서 밀리지않는 점프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 정신력에서도 터프하며 압박이 걸릴만한 장면의 PK도 어렵지않게 골로 연결했던 것입니다.
어떠한 형태에서도 골을 넣은 완벽한 스트라이커였던 반 바스텐에게 제동을 걸었던것은 부상뿐이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결함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리몸"은, 절정기였던 이 시기에 있어서도 불안감을 안겨주었던것입니다. 「혹시 그는 젊은나이에 축구인생의 막을 내리는것이 아닐까」라고하는 어두운 예감에 사로잡혔던 사람은 결코 적지 않았던것입니다.
그러한가운데, 그는 밀란에서의 6번째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개막부터 최고의 컨디션으로, 8라운드까지 8골을 넣었습니다. 2라운드 페스카라전, 밀란은 격이 낮은 상대에게 한때는 1-4로 리드당했지만, 반 바스텐의 해트트릭으로 역전승을 손에 넣었습니다. 반 바스텐은, 다음주에 열린 아탈란타전에서도 골을 넣으며, 계속해서 피오렌티나 원정에서 도피에타, 한층 더 6라운드 라치오전에서는 2개의 PK를 넣으며 밀란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던것입니다. 에이스가 최고의 컨디션을 보이며, 밀란을 2년째 지휘하고있었던 파비오 카펠로감독은, 아리고 사키시절의 전술에 묶여있던 축구에서, 창조성이 넘치는 축구로의 이행을 도모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밀란이 탄생했던 이날, 밀란은 원정에서 나폴리와 대전했던것입니다.
나폴리는 밀란에게 있어서 결코 유쾌한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고전을 예감했던 이유는 3가지입니다. 아직은 나폴리와의 상대전적이 좋지못했다고하는것, 마라도나가 없더라도 나폴리에는 고전의식이 남아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시점에서 밀란은 2위 인테르와 토리노에게 4포인트차를 벌리며 선수에 있었지만, 지난주 산 시로에서의 토리노전을 0-0의 무승부로 마쳤다고하는 좋지못한 흐름으로 끌고갔던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카펠로가 가장 두려워했던것은 나폴리의 모티베이션이었습니다. 나폴리는 이 시점에서 최하위 경쟁을 펼치고 있었던것입니다. 마라도나로 상징되었던 황금기는 종언을 고했고, 이 시즌의 나폴리는 최악의 출발선을 끊었던것입니다. 팬들의 분노는 정점에 도달해있었으며, 그 비판의 화살은, 개막이전에 팀의 주력인 디 나폴리와 알레안을 방출했던 페르라이노 회장을 향해있었습니다. 2명을 대신해서 영입한 스웨덴 MF 테르소와 우루과이 FW 폰세카가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대부분 기능하지못했다고하는것이, 커다란 불만이 되었던것입니다.
물론,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감독도 나폴리팬들의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시즌초반, 그의 전술은 전혀 기능하지못했던것입니다. 라니에리는 중앙MF였던 파리를 리베로에 배치하고, 마시모 마우로를 사령탑으로 발탁했지만, 이 변화는 팀을 혼란시켰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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