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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축구(Calcio Italiano)/이탈리아 대표팀(Nazionale)

아주리, 그 영광의 역사(1)

아주리의 엠블럼에는 "스텔라"(별)이 4개 빛나고있다. 이것은 자국개최였던 1934년과 38년의 프랑스월드컵, 82년 스페인월드컵
그리고 기억에 새롭게 새겨진 2006년 독일대회까지 세계의 정점에 4번이나 섰다는것을 나타내고있다.
그들의 영광의 역사를 되돌아보고싶다.



1934년 제2회 이탈리아 월드컵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결승전을 제압하며 이탈리아가 첫 영관에 빛났다

참가 34개국가운데 예선을 통과한 16개국이 제2회 이탈리아 본선대회에 출전했다. 1회대회에 이어 참가한것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프랑스, 벨기에, 미국뿐.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주력선수가 이탈리아로 망명하는것을 두려워해서 "2군"을 출전시켰다. 이탈리아가 돈으로 선수를 사들이는것에 많은 나라가 두려움을 안고있었던것이다. 덧붙여서, 1회대회에서 우승했던 우루과이는 그 타이틀 획득에 관해 유럽제국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던것도 있었고 국내의 정치적문제가 엮이며 불참이 확정되었다.

첫참가가 된 이탈리아는 비토리오 포쪼의 지휘아래 전력을 강화. 포쪼감독은 1회대회의 결승에 진출했던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인 양친을 가진 엔리케 구아이타, 라이문도 오르시, 루이시토 몬티를 아주리에 가세시켰다.

이 대회는 참가 16개국의 토너먼트제라고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실시되었다. 이탈리아는 로마에서의 첫경기, 4년전의 주역중 겨우 3명밖에 남아있지않았던 미국에게 소나기골을 퍼부으며 7-의 압승으로 8강에 진출. 피렌체에서는 벨기에에게 전반에는 1-2로 리드당했던 우승후보중 한 축 독일이 후반에 골러쉬, 에드문도 코넨의 해트트릭으로 5-2의 승리를 손에 넣었다. 오스트리아는 토리노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고전끝에 3-2로 프랑스를 눌렀다. 전 대회의 결승에서 플레이했던 선수가 한명도 남아있지않았던 아르헨티나는 볼로냐에서 스웨덴에게 2-3으로 패하며 대회에서 조기탈락했다. 남미의 영웅 브라질은 제노바에서 스페인과 맞대결. PK를 실축하는등 실수도 있었고 스페인에게 1-3에게 패했다. 우루과이의 대회 불참, 브라질과 아르헨티의 16강 탈락으로 준준결승에 진출한 8개국은 모두 유럽팀이 되었다.

이탈리아는 피렌체에서 벌어진 준준결승에서 스페인을 맞이했다. 스페인의 골키퍼 리카르도 사모라가 신들린듯한 세이빙을 연발하는것도 있어서 이탈리아는 1-1의 무승무로 마쳤다. 당시의 규칙으로는 PK전은 없었고 다음날에 재경기가 벌어졌다. 전날에 연장전을 포함해 120분동안의 사투를 벌인 양팀의 선수 대부분은 재경기에서 플레이할수있을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스페인은 전날에 플레이했던 선수중 7명을 멤버에서 제외했고(골키퍼 사모라도 제외했다), 이탈리아도 피로를 느끼고있는 4명을 제외하며 이 일전에 임했다. 이 경기에서는 심판의 판정이 큰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홈 이탈리아에게 확실히 유리한 판정은 스페인을 화나게했다. 정당하다고 볼수있을만한 골을 2개나 스위스인 주심이 취소했던것이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오르시의 코너킥을 쥐세페 메아짜가 헤딩으로 넣으며 1-0의 승리를 거두게된다.

또, 준준결승에서는 당시 숙적이자 우승후보이기도한 오스트리아 vs 헝가리가 볼로냐에서 맞붙었다. 양팀이 라이벌의식을 노출했던 격렬한 경기는 헝가리의 오른쪽 윙 임레 마르코스가 피치안에서의 난추를 일으키며 퇴장처분을 받았던것도 있어서 수적우위에 섰던 오스트리아가 2-1로 승리를 거뒀고 준결승에 진출. 밀라노에서의 준준결승에서는 퇴장선수가 나오며 10명으로 싸울것을 강요받았던 스웨덴을 독일이 2-1로 눌렀다. 토리노에서 벌어졌던 경기는 체코슬로바키아가 3-2로 스위스에게 승리를 거두며 준결승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맞이한 준결승, 이탈리아는 최대의 난적이라고 불러야할 오스트리아와 맞대결. 이탈리아에게 "도나우 사커"는 골칫거리였다. 그때까지 오스트리아와는 13번의 대결에서 8패를 당했던것이다. 하지만 이날의 아주리는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비로 진창이 된 피치에서 기력을 보이며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정면으로 맞섰다. 오스트리아의 골키퍼 페트르 플래처의 좋은 선방에 결정적인 기회를 계속 저지당했지만 전반 19분 드디어 균형을 깼다. 안젤로 스키아비오가 페널티에어리어 주변에서 때린 강력한 슛은 골키퍼 플래처에게 펀칭으로 저지당했지만 흘러나온 볼을 잡은 메아짜가 골을 노렸다. 골키퍼 플래처는 이것도 막아보였지만 볼은 골앞으로 떨어졌고 뛰어들어온 구아이타가 밀어넣었다. 이탈리아는 이 1골로 결승진출을 확정짓게되었다. 한편, 로마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가 독일을 3-1로 누르며 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 3일뒤 아주리는 로마에서 체코슬로바키아와 결승에서 맞붙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90분동안 숏패스를 연결하는 축구를 구사했고 이탈리아를 몇번이나 위기로 몰아넣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미드필더 안토닌 푸츠는 왼쪽측면에서 이탈리아의 수비진을 붕괴시키는 한편 절대적인 주장이기도했던 골키퍼 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의 안정된 플레이는 팀에게 침착함을 가져다줬다. 후반 26분에 체코슬로바키아가 선제골을 넣었다. 추격하던 이탈리아는 경기종료까지 남은 8분이라는 시점에서 오르시가 25미터의 롱슛을 쐈다. 이것을 프라니츠카가 잡았다 놓치며 튕긴 볼이 골문안으로 들어가며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1-1인채 연장전에 돌입했을때 이탈리아의 센터포워드 스키아비오는 확실히 지쳐있었다. 그래서 그는 센터포워드를 구아이타에게 넘기고 자신은 오른쪽 윙으로 포지션을 변경. 연장돌입이후 7분, 그 스키아비오가 상대에게서 볼을 빼앗으며 센터포워드가 된 구아이타에게 패스를 보냈다. 구아이타는 중앙에서 상대 수비진을 끌어낸다음 완벽하게 프리가 된 스키아비오에게 리턴패스를 보냈다. 스키아비오가 남은 에너지를 모두 담아 강력한 슛을 날렸다. 골키퍼 프라니츠카는 필사적으로 반응했지만 막아내지못했고 볼이 골네트를 흔들었다. 이렇게해서 이탈리아는 포쪼의 지휘아래 처음으로 세계를 제패했던것이다.


제2회 이탈리아월드컵 결승(1934년 6월 10일/로마)

Italy 2-1 Czechoslovakia

득점 : PUC(71', C), ORSI(81'), SCHIAVIO(95', 이하 I)

Italy : COMBI(C), MONZEGLIO, ALLEMANDI, FERRARIS,  MONTI, BERTOLINI, GUAITA, MEAZZA, SCHIAVIO, ORSI

Czechoslovakia : PLANICKA (GK)(C), ZENISEK, CTYROKY, KOSTALEK, CAMBAL, KRCIL, JUNEK, SVOBODA, SOBOTKA, NEJEDLY, PUC




1938년 제3회 프랑스 월드컵

에이스 피올라가 이끈 아주리는 월드컵 연패라고하는 위업을 달성!!

원래 이 대회는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국내의 분쟁때문에 개최가 곤란해졌고 대체차원에서 프랑스에서 개최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계최강의 축구왕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의 자국개최까지 결국 40년을 기다리게되었던것이다. 예선에 참가했던것은 36개국. 예선을 통과한 16개국이 본선대회에 출전했다. 지난 대회에 이어 우루과이는 참가거부, 그리고 국내의 정세불안으로 인해 아르헨티나도 참가를 거부했다. 스페인은 내전발발로 참가사퇴, 높은 팀전력을 가진 오스트리아도 나치스 독일에게 통합되는등 정치적이유로 참가를 사퇴. 제2차 세계대전의 향기가 느껴지는 시기의 대회였다.

비토리오 포쪼감독은 4년전 이상으로 강력한 아주리를 거축했다. 지난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플레이했던것은 쥬세페 메아짜와 지오바니 페라리뿐. 4년전 이탈리아에 세계제패를 안겨준 안젤로 스키아비오의 포지션, 센터포워드에는 이탈리아축구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중 한명으로 칭송받는 실비오 피올라가 들어갔다.

지난대회와 마찬가지로 이 대회도 모두 토너먼트제로 진행되었다. 16강에서 이탈리아는 노르웨이를 상대로 고전을 강요받았지만 연장전 끝에 가까스로 2-1의 승리를 손에 넣으며 준준결승에 진출. 오스트리아가 시작단계에서 불참을 선언했기때문에 FIFA는 대신 잉글랜드의 출전을 인정했지만 잉글랜드는 참가를 거부. 이때문에 스웨덴은 부전승으로 준준결승진출이 확정되었다. 첫출전인 쿠바가 3-3의 무승부뒤 재경기에서 루마니아를 상대로 3-1의 승리를 거둔것이 큰 센세이션이었다. 오스트리아국적의 선수를 4명 추가한 독일은 유력한 우승후보로 비춰졌지만 스위스와 1-1의 무승부. 재경기에서는 전반에만 2-0으로 리드했던것도 있어서 누구나 독일의 승리를 예상했을것이다. 하지만 그후 스위스가 맹반격. 4골을 빼앗은 스위스가 4-2의 역전승리로 준준결승진출을 확정지었다.

이탈리아는 준준결승을 파리의 스타드 드 콜롬베에서 홈팀 프랑스와 맞붙었다.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5만8천명의 프랑스인앞에서 첫경기 노르웨이전의 멤버를 3명 교체하며 임한 아주리는 디펜딩챔피언다운 축구를 전개 3-1로 프랑스를 압도했다. 프랑스에는 1회대회에서 3회대회 연속으로 월드컵에 출전한 에드몽 델푸르와 에티엔 매틀러가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게는 절대적인 득점력을 자랑하는 "수퍼 스트라이커" 피올라가 있었다. 그는 그때까지 아주리에서 16경기 16골을 기록, 이미 세계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탈리아는 피올라의 2골을 포함해 3골을 넣으며 승리를 손에 넣었고 준결승에 진출했던것이다.

준준결승에서 주목받았떤것은 스웨덴 vs 쿠바였다. 16강에서 루마니아를 재경기끝에 탈락시킨 쿠바가 강호 스웨덴을 상대로 어떤 축구를 선보일것인가. 지중해의 도시 안티브에서 벌어진 경기에 전세계가 주목했던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의 차이를 보여줬다. 끝나고나니 8-0이라는 큰 차이로 스웨덴이 압승. 카리브발 해풍은 준준결승까지 불어오는 형태가 되었던것이다. 브라질 vs 체코슬로바키아는 확실히 사투라고 부르는데 적합한 일전이 되었다. 격렬한 신체적접촉이 계속되는가운데 브라질에서 2명, 체코슬로바키아에서 1명의 퇴장이 나왔을뿐만아니라 체코슬로바키아의 골키퍼 프란티섹 프라니츠카는 팔을 골절당했고 추가로 에이스 올드리치 네이들리는 발목골절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결국 이 경기는 1-1의 무승부. 다음날의 재경기에서 브라질은 11명가운데 9명을 교체해서 경기에 임했다. 그중 한명인 레오니다스와 호베르투의 골로 2-1의 역전승리를 손에 넣게되었다.

마르세이유에서의 준결승에서 이탈리아는 브라질과 맞대결. 브라질의 아데마르 피멘타감독은 어째서인지 이번대회에서 7골을 넣었던 레오나디스와 팀을 멤버에서 제외했다. 2명이 빠진 브라질의 전력다운은 명확했다. 후반 6분에 지노 콜라우시, 15분에 메아짜가 PK를 넣은 이탈리아는 경기종료직전 로메우에게 골을 허용했지만 2-1로 결승진출을 확정지었다. 스타드 콜롬베에서 벌어졌던 또하나의 준결승에서는 헝가리가 5-1로 스웨덴을 압도,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은 파리의 스타드 콜롬베에서 벌어졌다. 스피드와 파워풀한 플레이를 특기로한 이탈리아와 우아함과 정확성을 특기로하는 헝가리의 대결. 경기는 많은 골이 터지는 스펙터클한 전개가 되었다. 전반 6분에 선제골을 넣었던것은 콜라우시였다. 이탈리아는 그의 3경기 연속골로 리드를 빼앗았지만 그 직후에 팔 티트코스에게 골을 허용하며 동점으로 추격당했다. 전반 16분, 콜라우시와의 원투로 상대 골키퍼와 1대1이 된 피올라가 냉정하게 골을 넣으며 이탈리아는 2-1로 다시 리드를 빼앗았다. 추가로 전반 35분, 메아짜의 절묘한 패스를 콜라우시가 넣으며 귀중한 추가골. 후반에 들어가서 포쪼감독은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축구스타일로 체인지했다. 2톱을 최전방에 남기고 미드필더를 지배하며 수비를 강화하는 카운터어택을 노린다라고하는 축구다. 후반 25분에 기요르기 사로시에게 골을 허용하며 1점차로 추격당했지만 즉시 피올라의 골로 달아났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2대회연속으로 세계를 제패하게되었다.

 
제3회 프랑스월드컵 결승(1938년 6월 16일/파리)

Italy 4-2 Hungary

득점 : COLAUSSI(6', 35'), PIOLA(16', 82', 이하 I), TITKOS(8'), SAROSI(70', 이하 H)

Italy : OLIVIERI, FONI, RAVA, SERANTONI, ANDREOLO, LOCATELLI, BIAVATI, MEAZZA(C), PIOLA, FERRARI, COLAUSSI

Hungary : SZABO, POLGAR, BIRO, SZALAY, SZUCS, LAZAR, SAS, VINCZE, SAROSI(C), ZSENGELLER, TITKOS


출처 : 월간 칼치오2002 2010년 6,7월 합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