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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사이먼 쿠퍼 정기칼럼

[사이몬 쿠퍼 정기칼럼] 술과 영국축구 - '선수의 증거'에서 '잊어야할 악습'으로 시대와 함께 사라져갈 음주문화


과거 영국에서는 축구와 술은 뗄레야 뗄수없었다. 경기전 라커룸에서 연습후 펍에서 선수는 맥주와 위스키를 마셨다.
음주가 축구선수의 증거라고도 말할수있었던 그런 시대도 지금은 과거. 문화는 어떻게해서 달라진것일까.

text by Simon KUPER

저자 프로필
사이먼 쿠퍼 : 유럽을 대표하는 저술가. 영국경제잡지『파이낸셜 타임스』등에서 집필을 맡고있습니다. 스포츠를 인류학적 견지로 고찰하는 새로운 저널을 개척했고 1994년 축구의 이면을 다룬 획기적인 명저『축구의 적』을 상신. 윌리엄 힐이 주최한「Sportsbook of the Year」을 수상했습니다. 우간다출신의 잉글랜드인이며 네덜란드, 미국, 스웨덴, 자메이카에서 자라 잉글랜드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세계적인 배경의 소유자입니다. 69년생.
 

추운 오후의 라커룸, 킥오프전에는 위스키병이 돌았다.

리버풀이 올해 1월에 영입한 앤디 캐롤은 확실히 잉글랜드축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아직 22세인 젊은 스트라이커를 영입하기위해 리버풀은 35m파운드나되는 거금을 지불했다. 그는 이미 잉글랜드대표이기도하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캐롤은 잉글랜드축구의 '과거'의 일면도 갖고있다. 술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다부진 체격의 센터포워드.

생각나는것은 얼마전 뉴캐슬에서의 사건이다.『블루범브』라는 나이트클럽에서 8잔에서 9잔의 파인트글래스를 비운 캐롤은 '결코 의도하지않게' 글래스를 손에서 놓치며 한명의 남자의 눈가에 상처를 입혀버렸다. 그렇다, 어디까지나 "사고"로서

"캐롤은 주량을 줄이는것을 배우지않으면안된다"

얼마전 잉글랜드대표의 파비오 카펠로감독은 잉글랜드인 기자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는 아직 젊어요. 그의 태도는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우리는 과거 이것과 같은 광격을 눈으로 목격한적이 있다. 그것은 지금부터 20년정도전의 일이다. 그런 우려스러운 견해가 있지만 그런 걱정은 무의미한것이다. 오히려 영국축구와 술의 문제는 종언을 맞이했던것이다. 축구와 술, 잉글랜드의 옛 전통은 죽었다. 

잉글랜드대표의 감독이었던 그레엄 테일러는 글래스를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보며 젊은 천재미드필더 폴 개스코인에 대해 말했다. 음주에 대해서는 주의하지않으면안된다, 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실패해버렸다. '가자' 개스코인은 잉글랜드축구사에도 새겨질정도로 알콜중독자가 되었던것이다. 캐롤은 개스코인과 같은길, 즉 술로 가득한 잉글랜드축구의 어두운 부분을 다시 걷게되는것은 아닐까.

대표의 카펠로감독에게 음주를 주의받았던 캐롤이지만 개스코인의 전철을 밟는일은 없을것이다. 시대는 달라진것이다.

과거 영국에는 두가지종류의 축구선수가 있엇다. 술을 매우 좋아하는 선수와 술을 손에서 뗄수없는 알콜중독증의 선수다. 위대한 선수의 대다수가 알콜중독자였다. 조지 베스트, 지미 그리브스, 짐 벅스터, 그리고 개스코인이 대표적인 선수들일것이다. 잉글랜드대표의 위대한 주장들, 보비 무어와 브라이언 롭슨도 그랬다. 과거 영국축구는 음주라고하는 행위를 금지하지않았고 오히려 장려할정도였던것이다.

어느 추운날 오후의 라커룸, 킥오프전에는 위스키병이 나뒹군다. 그리고 경기후에는 전원이 한잔을 즐긴다. 그러한것들은 영국군부의 풍습에서 왔던 국가의 전통이기도했고 남자들끼리의 우정, 혹은 인연의 상징이기도했었다. 1990년대중반까지 자신의 신체를 관리하는 선수, 그것을 요구하는 감독은 거의 존재하지않았다. 평일 오후에 술을 술을 마실수있는것은 , 축구선수인것의 이점이라고 생각될정도였던것이다.

그들은 술을 충분히 즐길정도의 돈을 갖고있었다. 선수를 숭배하는 주위는 기쁘게 그들에게 술을 내줬다. 그것은 피치위에서 느끼는 압박에서 해방되는때이기도했고 선수들은 연습 이후의 오후를 즐겼다. "지금까지 벌어들였던 전재산의 90%는 술과 여자와 자동차에 써버렸다. 나머지는 단순한 낭비했을뿐"이라는것은 베스트가 남긴 말이다. 8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네덜란드 출신의 미드필더 아놀드 뮬렌은 과거 이렇게 말해줬다.

"오전 연습이 끝난뒤 다같이 "점심식사"를 하러 외출했다. 펍으로"

그리고 그는 웃었다.

"그곳에는 빵이 없었다. 오히려 몇잔이나되는 파인트글래스뿐이었다." 70년대에 글래스고에서『퍼기즈 』라고하는 펍을 경영했던 알렉스 퍼거슨은 86년에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취임했고 그런 축구선수들의 습관을 눈으로 목격하고 재인식한다.『축구선수의 음주라고하는것은 노동자계급에서 자라난 그들이 그들의 가정에서 물려받은것이다』.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기록했다.『그들의 부모는 공장과 탄광에서 과도한 노동을 했었다. 일이 끝나면 파인트를 즐겨야지, 라는 사고방식이 있었다. 선수의 대다수는 그러한 가정에서 자랐고 노동자의 멘탈리티로 물들어있었다. 게다가 토요일밤이라는것은 노동자에게 있어 1주일의 끝이기도했었다. 숨을 돌릴수있는 타이밍이었던것이다』


음주는 체중의 증가를 불러오고 특히 기술적으로 섬세한 선수에게 있어 치명적이다.

큰 국제대회에서도 음주는 완벽하게 규제되지않았다. 22명의 잉글랜드 축구선수를 같은 장소에서 몇주동안 채워넣으려한다면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자국에서 개최된 EURO96 개막직전 잉글랜드대표는 홍콩으로 원정을 떠났지만 선수들은『차이나 점프』라는 펍에 우르르 몰려가는것이 사진에 찍혔다. 그곳은 "치과의의 의자"라고 불리는 퍼포먼스로 유명한 바였다. 술을 직접 입안으로 넣어주는 퍼포먼스다. 잉글랜드로 귀국하는 항공편안에서 선수들은 개스코인의 생일을 축하했다. 당연히 만취했던 그들은 상공에서 비지니스클래스의 TV스크린 2대와 테이블을 파손했다.


그리고나서 맞이한 EURO96에서 개스코인은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아름다운 골을 넣었다. 잔디위로 드러누우며 기뻐했던 개스코인. 달려온 팀메이트들은 손마다 페트병을 들고있었고 그의 입에 물을 부었다. 만약 그 팀에 캐롤이 있었다면 그는 예의바른 도련님으로 취급받았을것이다. 당시의 대표팀의 캡틴이 그 유명한 토니 아담스다. 알콜중독증을 고백했던 중앙수비수이다. 그는 음주운전으로 신병이 구속되었기때문에 대표소집에 응할수없었다라는 일화가 남아있다.

그리고 감독은 테리 베너블스.『스크라이브스 웨스트 』라는 나이트클럽을 런던에서 경영했었다. 당시 잉글랜드대표에 있어 술이란 스파이크와 마찬가지로 빼놓을수없는 존재였다. 팀닥터였던 존 클렌은 나에게 이렇게 가르쳐줬다. "소셜 드링킹이라는것이 있었죠. 모두 축구에 대해 말하면서 파인트를 공유하는것입니다. 그것은 거의 의무이기도했어요."

긴 잉글랜드축구의 역사속에서 태어난 해리 레드납(현 토튼햄 핫스퍼 감독)도 음주를 계속했었다. 90년대후반부터 프리미어리그에 외국인선수가 유입되기시작했지만 그는 왜 외국인이 팀메이트와 좋은 관계를 쌓지못하는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녀석들은 골프에도 경마에도 흥미를 갖지않았습니다. 맥주조차 마시지않았어요." 만취한 캡틴이 한밤중에 팀메이트의 자택 정원에 차를 몰고들어오더라도 당시는 그렇게 놀랄만한 사건이 아니었다.

경기후 라커룸에서 축배를 드는 베스트. 90년대초반까지 이러한 광경은 일반적이었고 음주는 축구선수의 증거이기도했다.

아담스가 아스날에서 함께뛰었던 공격수 폴 머슨은 술과 코카인과 도박에 빠져있었다. 90년대 잉글랜드축구를 이해하고싶으면 꼭 머슨의 회고록『How not to be a Professional Footballer』을 읽어봤으면한다. 표지는 머슨의 웃는얼굴이 디자인된 맥주캔의 그림이다. 문화로서의 술.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선수의 신체를 좀먹어갔다.

90년대 국립스포츠의료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던 그렉 맥래치는 이렇게 설명해줬다. "단기적으로는 선수는 매일 마시더라도 톱클래스의 퍼포먼스를 발취할수있습니다. 술은 탈수증상을 일으키기때문에 1리터의 맥주를 마시면 그뒤 배뇨등으로인해 신체는 1.3리터의 수분을 잃게됩니다. 하지만 젊고 건강한 육체를 갖고 확실한 수면을 취한 다음날 물과 홍차를 마시며 잃었던 수분을 보급하면 선수는 위화감과 이상을 느끼는일이 없을것입니다."

킥오프직전부터 벤치옆의 게토레이에 손을 뻗는 선수의 모습은 90년대는 일반적이었다. 맥래치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심한 음주를 2년이나 지속한다면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게됩니다. 무엇보다도 체중이 늘어납니다. 그것은 피할수없는것이죠. 특히 기술적으로 섬세한 선수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치명적일것입니다. 투지가 특색인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중앙수비수라면 괜찮습니다. 개스코인보다도 오랜시간 퍼포먼스를 유지할수있습니다." 매년 개스코인이 계속해서 부상을 당했던것은 큰 중앙수비수들의 격한 태클을 피할수없게되었기때문이기도했다.

애주가의 은퇴는 빠르다. 그 예외인것은 무어와 롭슨(각각 37세, 39세까지 현역생활을 유지했다)은 알콜분해효소를 일반인 이상으로 갖고있었을것이다. 이러한 술(음주)문화는 잉글랜드가 오랫동안 국제무대에서 결과를 남기지못하는 이유중 하나이기도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러한 음주문제는 없다. 식사때 와인을 마시는 습관이 있는 프랑스에서는 과거에는 선수에게 간경화 등의 건강문제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잉글랜드인처럼 폭음은 하지않았다.

영국문화의 하나이기도한 펍. 선수가 밤의 번화가에서 일반손님과 분쟁을 일으키는 스캔들은 과거에는 일상다반사였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잉글랜드와 마찬가지로 맥주문화권에 속한다. 하지만 그들은 잉글랜드인보다도 프로정신이 철저하며 자신의 몸을 지키는 중요성을 알고있다. 독일에서의 술과 관련된 마지막 에피소드는 지금부터 11년전, EURO2000에서 조기탈락했던 직후의 일이다. 그것도 여름의 휴가가 시작되었을때의 일이었다.


영국인 선수들은 드디어 자신의 몸을 지키는것을 배웠던것이다.

그런 외국인선수가 잉글랜드로 건너와서 음주문화의 현실을 눈으로 목격한다면 놀랐을것이다. 96년 여름 프랑스의 패트릭 비에이라(現 맨체스터 시티)는 아스날에서 데뷔를 기다리고있었다. 경기전 주장 아담스가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했다. 당시 비에이라는 영어를 거의 알아듣지못했지만 열번을 토하는 아담스를 지켜보면서 머리를 굴렸다. "주장은 우리의 모티베이션을 높이는 말을 던지고있을거야." 미팅이 끝난뒤 비에이라는 프랑스인 팀메이트에게 물었다. 그는 대체 어떤 말로티베이션을 끌어올리는것이냐고.

그러자 팀메이트는 말했다. "나는 알콜중독자다, 라고 말했을뿐." 그것은 새로운 잉글랜드 축구의 개막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 음주를 비난하는 외국인선수가 늘어나며 전통있는 영국문화를 바꿔갔던것이다. 바다를 건너온 외국인선수의 대다수는 이슬람교도가 아니었음에도불구하고 전혀 술을 입에대지 않았다. 아스날의 네덜란드인 데니스 베르캄프도 거의 술을 마시지않았다. 그때문에 그는 취한 팀메이트를 연습장에 데려다준다는, 그다지 매력적이지않은 일을 몇번이나 맡게되었다.

머슨, 아담스라는 술의 문제를 안고있던 선수를 보유하며 거친 이미지가 강했던 아스날을 극적으로 바꿨던것이 벵거였다.


얼마 안있어 아스날에 클럽사상 처음으로 외국인감독이 탄생했다. 프랑스인 아르센 벵거는 북런던의 클럽에 참신한 사고방식을 도입했다. 선수의 휴게실에서 술명을 일소했던것이다. 이렇게해서 의식개혁을 실시한 아스날은 수많은 타이틀을 얻게되었고 다른 클럽의 의식에도 변화가 싹텄다. 벵거류가 도입되었던것이다. 시대는 진화했고 얼마지나지않아 선수의 급료도 상승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게되었다. 술을 조금만 참고 자신의 커리어를 몇년 늘리는쪽이 이득이 아닐까, 라고.

90년대후반부터 2000년대초반에 걸쳐 리버풀을 이끌었던 프랑스인 제라드 울리에(現 아스톤 빌라 감독)은 사사건건 선수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왜 '지금'나이트클럽에 갈 필요가 있는거지? 커리어가 끝나면 너희들은 나이트클럽자체를 사는것도 가능할텐데". 이렇게해서 영국축구의 음주문화는 눈에띄지않게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사의한 흐름이기도했다. 왜냐하면 영국에 있어 음주문화는 확실히 뿌리를 내리고있었기대문이다. 게다가 시대와 함께 여성의 음주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게되면서 나라 전체의 술 소비량은 계속 늘어났던것이다. 

WHO(국제보건기구)가 발표한 2005년의 데이터에 의하면 잉글랜드의 성인(15세 이상) 1명당 연간 술 소비량은 13.37리터. 193개국가운데 17위이며 식사중의 음주가 일반적이지않은 나라가운데서는 매우 높은 수치다. 하지만 현대 축구선수는 그렇지않다. 과거 음주는 축구선수의 증거였다. 그것이 지금은 낮은 레벨로 타락한 선수의 증거밖에되지않는것이다.

토튼햄의 수비수 레들리 킹이 2009년에 나이트클럽에서 소동을 일으키며 체포되었을때 레드납감독은 즉시 선수의 나이트클럽 출입을 금지했다. "축구선수는 마셔서는 안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그 레드납이말이다. "페라리에 경유를 넣지않으면 운행이 불가능하다. 그들은 축구에 생활을 마쳐야한다." 그렇게 말했던것은 그 붉은 얼굴의 해리, 10년전에 술에 손을 대지않는 외국인선수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던 그 레드납인것이다.

커뮤니케이션수단으로 술은 빼놓을수없는것이라고 믿었던 노장 레드납이 금주를 실시하는 변모가 시대의 변화를 상징한다.

레드납의 이런 변모야말로 잉글랜드축구의 술에 대한 사고방식의 변화를 여실히 나타내는것이다. 지금은 모든 클럽이 메디컬팀을 갖고있고 선수의 혈액을 검사해서 식사제한을 실시하게되었다. 레드납의 토튼햄도 그렇다. 대중지가 보도하는 스캔들도 술에서 섹스, 혹은 도박으로 달라졌다. 피치위의 퍼포먼스에 직접영향이없는 사상으로 변화한것이다.

축구황제 펠레는 "섹스는 피치위에서의 플레이에 영향을 주지않는다. 악영향을 주는것은 섹스를 위해 한밤중에 나이트클럽을 배회하는것"이라고 말했다. 잉글랜드선수들은 드디어 자신의 몸을 지키는것을 배우게된것이다. 그 변모는 결과로도 나타나고있다. 80년부터 95년까지 잉글랜드대표의 통산승률이 4할 9푼이었던것에반해 96년부터 2011년까지의 승률은 5할 7푼으로 늘어났다.

그렇다, 2011년인 지금 캐롤은 개스코인보다도 간단하게 술을 끊을수있을것이다. 적어도 나이트클럽의 오너 아래에서 플레이하는일이 없기때문이다.

출처 : 월드사커다이제스트 2011년 5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