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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겨울의 메르카토 마지막날 전격이적의 진상 - Fernando TORRES


아브라모비치의 꿈과 리버풀의 환멸

월드컵 유치전에 노력과 자력을 쏟아부어....

궁극적으로는 모든것을 결정했던것은 그 남자의 권위적인 한마디라고하는것이 되었다. 그렇다, 그의 축구클럽은 언제나 그랬던것이다. 그, 즉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의 모든것을 움직였다.

15m파운드라고하는 위약금을 지불하며 매우 유능한 감독(조세 무리뉴)를 방출했을때와 마찬가지로 아브라모비치는 마음에 드는 센터포워드(페르난도 토레스)를 꼭 손에 넣으려고했고 그렇게 정했던것이다. 그것이 5천만파운드의 쇼핑이라는것과는 관계없다. 실제로 돈은 문제가 아니다. 거금을 들인 같은날에 추가로 2100만파운드를 탁 내놓았다. 수비수(다비드 루이스)를 영입하기위해서였다. 욕망을 채우기위해 자존심을 채우기위해 돈을 아끼지않는것이 아브라모비치의 방식이다.

첼시에게 긴축재정이 실시되고있던것은 거짓이 아니다. 누적적자는 부풀어올랐고 그것을 해소하기위해 전력의 간소화, 선수의 주급과 보너스를 깎고 구단스탭의 해고가 진행되었다. 그 염두에 UEFA가 2012-13시즌부터 도입할 예정인「파이낸셜 페어플레이」가 있었던것은 틀림없다. 수입을 상회하는 지출을 금지하는 이 규칙에 대해 아브라모비치는 당초부터 이해와 동의를 보였다.

하지만 큰 문제를 앞에두고 러시아의 대부호는 말없이 원점으로 복귀했다. 돈으로 모든것을 말할수있다라고하는 원점으로. 확언하자면 첼시의 상황은 그만큼 절박했다.

아브라모비치가 우려했던것은 챔피언스리그의 출전권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현실이다. 주지하고있는대로 챔피언스리그 제패는 그의 야망이며 비원이다. 그 꿈에 대한 도전권을 잃을지도모른다는 사태에 첼시는 쫓기고있었다. 작년 11월 이후 극도의 부진에 빠졌던 블루스(첼시의 애칭)은 5위까지 순위가 떨어졌고 떠오를 기색도전혀 없다고 말해도 좋을정도로 볼수없었다. 5위로 마치면 어떻게될것인가, 설명할필요도 없을것이다.

말해보자면 페르난도 토레스(와 다비드 루이스)는 아브라모비치의 꿈을 충족시키기위해 스탬포드 브릿지(첼시의 홈구장)으로 데려온것이다.

현장에서는 보강의 필요성이 주장되고있었다. 고령화가 심각한 팀에는 단순히 우수함뿐만아니라 젊고 뛰어난 재능이 필요하다라고 카를로 안첼로티감독은 호소했다. 경비절감의 일환으로 미하엘 발락, 히카르두 카르발료, 조 콜, 디코, 벨레티같은 5명의 주전급을 방출하면서 상응하는 대체자의 영입이 보류되었던 이번시즌, 첼시의 벤치는 20세안팎의 젊은이들로 메워지게되었다. 이 선수층의 얇음이 치명상이 되며 대부진을 불러왔지만 현장의 걱정은 아브라모비치에게 전달되지못했다.

왜일까. 아브라모비치의 신경은 첼시에 없었기때문이다. 그때의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안건은「월드컵」이었다. 조국 러시아의 유치활동(2018년대회)에 노력과 자력을 쏟아부었던것이다. 그 결과 코범(첼시의 트레이닝시설)과 스탬포드 브릿지에 모습을 보일 기회는 격감했고 팀의 사정을 파악할수없게되었다.

그 유치활동이 작년 12월, 성공속에 끝났고 아브라모비치가 첼시와 제대로 마주하게되었던것은 해가 바뀌고도 1월의 끝이 가까워지고나서였다. 팀의 궁핍한 상태를직접 봤던것이다. 토레스의 5천만파운드라고하는 이적료는 잉글랜드사상 최고액수였다. 파이낸셜 페어플레이를 부시한 무모한 투자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파이낸셜 페어플레이를 대비해서 대형보강을 단행했던 측면도 있다.

이러한것이다. 반대로 보강을 하지않고 이대로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잃는다면 동시에 큰 수입원을 잃게된다.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으로 얻을수있는 금액은 대략 4천만파운드이며 이것이 없어진다면 수지의 결산을 맞추는것은 보다 곤란해진다.

도, 경리처리의 수속에서도 이를테면 샛길이 용이하다. 주급을 포함한 토레스(와 루이스)의 영입비용은 계약기간 5년반으로 분할해서 지급하기때문에 장부상에서의 지출은 이번시즌은 1300만파운드로 경미한것이다. 그 이후에는 연간 27m파운드가 되지만 그럼에도 파이낸셜 페어플레이의 준수가 곤란해질만한 큰 지출은 아니다.

그런 한편으로 광고매상이 좋으며 적자해소의 목표를 세웠던 재정상황도 아브라모비치의 등을 밀었다. 8년간 총액 1억6천만파운드라고하는『아디다스』와의 새로운 계약을 시작으로 그외의 스폰서와도 일제히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갱신. 추가로는 시즌티켓의 가치상승과 스탬포드 브릿지의 네이밍라이트(명명권)으로 수천만파운드의 수익이 예상된다라고하는것.

커머셜밸류(광고적가치)라고하는 관점에서도 토레스는 이상적인 새로운 전력이었을것이다. 이 스페인대표가 어느정도의 가치를 갖고있을까. 리버풀의 전 오너 톰 힉스와 조지 질레트가 아무리 큰돈을 쌓아놓아도 결코 방출하지않았던것에서도 알수있을것이다.

토레스와 함께 난제를 등에 짊어진것이 안첼로티감독이다
어디까지나 드로그바와 2톱을 형성해봤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팀에 적응시킬것인가, 안첼로티는 난제를

스포츠면으로 눈을 돌려보더라도 물론 토레스는 더할나위없는 재능이다. 26세라고하는 나이는 세대교체라고하는 요구에도합치한다. 선수로서의 능력은 말할필요도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으로 변명은 허용되지않게되었습니다. 물론 압박이죠. 하지만 아무것도 기대되지않는 평범한 팀을 이끄는것보다도 훨씬 좋은건 당연합니다. 재능이 없다면 정점에는 설수없기때문이죠. 그 가능성을 우리는 지금 손에 넣었습니다」

대형보강이 실현되고나서 4일후, 안첼로티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해임에 관한 소문도 돌았던 상황에서 반대로 새로운전력을 받아서 단숨에 전망이 열렸던것이다. 자연스레 웃음이 새어나올만한상황이라는것이다. 하지만 안첼로티는 동시에 큰 과제를 등에 짊어지게되었다. 그건 토레스를 어떻게해서 팀에 적응시킬것인가다. 현재 사용하고있는 4-3-3시스템에서는 토레스를 둘곳은 1톱이외에는 없다. 하지만 그곳에는 디디에 드로그바라고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 이 두 영웅을 어떻게 양립시킬것인가.

토레스의 데뷔전이 되었던 26라운드 리버풀전-그렇다, 첼시에서의 첫경기가 느닷없이 친정팀과의 대결이 되었다-에서, 안첼로티가 채용했던것은 4-3-1-2시스템이었다. 토레스와는 드로그바와 2톱을 짜서 선발. 트레콰르티스타에는 본래 공격수인 니콜라 아넬카가 들어갔다.

기책이라고도 말할수있는 이 새로운 방법은 중요한 토레스가 말하자면 제동이 걸리며 완벽히라고 말해도 좋을정도로 기능하지못했다. 61분에 벤치로 물러나기까지레스가 쐈던 슛은 2개. 드로그바의 스루패스에 반응해서 마무리로 연결했던 30분 이후의 플레이가 볼거리라고 말하면 유일한 볼거리였다. 리버풀전을 계기로 앞으로 어떤 전술적해결책을 들고나올것인가, 진가를 추궁당했던 안첼로티지만 다만 적어도 그곳에 비장감은 없다.

「토레스와 루이스가와서 공기가 일변했어요」

그렇게 말한 안첼로티는 오히려 반응을 느끼고있는듯했다.「선수들은 모티베이션을 새롭게했습니다. 클럽이 좋은 일을 해줬기때문이죠. 이번에는 이쪽의 차례다, 그런 식이죠」

그런 팀안에서 누구보다도 의욕적인것이 토레스다. 첼시에 합류한 연습첫날부터 그는 드로그바와 아넬카와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취했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깊게하기위한 노력을 하고있다.「그들의 플레이를 빨리 이해하고싶고 어쨌든 조금이라도 빠르게 팀에 적응하고싶습니다」


악정을 계속한 전 오너에게 실망하며 리버풀에 대한 애정을 잃은 토레스
이적은, 필연의 귀결이었다 
그대로 잔류하더라도 같은 기분으로 피치에는

토레스가 이적을 결단했던 이유,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리버풀에 대한 환멸감을 느꼈기때문이다. 피치에서의 성공보다도 비지니스면에서의 그것에 애쓸뿐이었던 전 오너(힉스&질레트)의 자세에 심각한 초조함을 느끼며 공공연히 말하기를 꺼리지않았던 리버풀에 대한 사랑을 잃어갔던것이다.

2월 4일, 과거에 예를 볼수없을정도의 대규모의 기자들로 메워진 첼시의 브리핑룸. 그곳에 나타난 토레스는『엘 니뇨』라고하는 별명 그 자체대로 매우 젊고 발랄했다.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원래 26세라고하는 실제연령보다 젋게보이는 토레스지만 새로운 도전을 앞에두고 생기와 활력이 넘치고있었다. 마치, 또하나의「엘 니뇨」(적도부근의 동대서양에서 일어나는 기상현상. 각지에 이상기상을 일으킨다고한다)처럼 에너지로 가득차있었다.

회견에서는 거침없는 언사로 기자의 질문을 피하거나하지않고 가슴속에 있는말들을 시원하게 털어놓은 토레스. 단호하게 잘라말했던것은 안필드를 떠난것에 후회는 없는가, 라고하는 질문에 대해서였다.「어느쪽(토레스 본인과 리버풀)에게 있어서든 최선의 선택이었을것입니다. 잔류했더라도 이미 같은 기분으로 플레이는 불가능했을겁니다. 리버풀에는 실망해버렸어요」

「리버풀도 (자신의 이적료를) 유효하게 활용한듯하네요. 캐롤과 수아레즈는 매우 좋은 선수들. 제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팀에 공헌하지않을까요. 원한다면 아직 선수를 할수있을겁니다. 하지만 돈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나가고싶어하는 선수를 무리하게 잡아두더라도 좋은일은 아니죠」

이 코멘트에서 밝혔던것처럼 토레스의 마음은 완전히 리버풀에서 멀어졌다. 2009년 여름에 샤비 알론소의 방출, 2010년 여름에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매각과 라파엘 베니테즈감독의 해임이라는 팀의 중요인물을 연거푸 내보낸 클럽에 의심이 생겼고 신뢰는 잃어버리게되었다.

베니테즈의 뒤를 이은 로이 호지슨 전임감독과도 신뢰관계는 쌓이지않았다라는것.

「호지슨이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 결국 이해할수없는채였습니다. 호지슨도 마찬가지가아니였으려나. 우리들에 대해 이해하지못하는듯했습니다」

호지슨이 해임되고 케니 달글리쉬가 감독이 되고서도(2010년 1월), 토레스는 표면상으로는 환영하면서도 클럽에 대한 희망을 되찾지못했다.「인생에 있어서 변화는 필요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트레이닝장으로 향하는 나날속에 어느날 개달았습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제게는 새로운 도전, 새로운 기회가 필요했었습니다. 그런때 톱팀의 하나가 저를 필요로한다고 말해줬습니다. 네 힘이 필요하다. 고민은 전혀 하지않았습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도전해야한다. 첼시는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저를 영입하기위해 최후의 최후까지 힘을 다해 싸워줬습니다」

이적합의까지의 경위를 대강 돌아보면 첼시가 토레스의 영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던것은 1월의 4번째주. 이적기한까지 1주일을 남겨둔 최종단계였다. 첼시의 움직임에 호응해서 토레스는 이적지원서를 리버풀에 제출. 클럽간의 교섭이 시작되었다.

첼시의 첫 오퍼는 2800만파운드였고 이것은 제시받은 1월 25일중으로 돌려보내졌다. 3500만파운드로 올렸던 첼시의 두번째 오퍼는 27일에 다시 각하. 여기서 리버풀에서의 5000만파운드의 카운터오퍼가 날아왔다.

이 금액에는 역시 아브라모비치도 난색을 보였고 교섭은 전진되지않은채 기한최종일인 31일을 맞이했다. 이날 멜우두(리버풀의 트레이닝시설)에 에이전트와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난 토레스는 전체연습에 참가하지않고 긴장한 얼굴로 건물안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여전히 결론은 나오지않은채 시간이 흘러갔고 결국 토레스는 자신이 어떤팀의 유니폼을 입게되는것인가, 알지못한채 귀가.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라고한다.

「2월 1일 아침에 눈을 떴을때도 제가 첼시의 선수인지 리버풀의 선수인지 알지못했습니다. 어쨌든 (1월31일은) 인생에서 가장 길고 괴로운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해피엔딩이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소원이 이뤄지며 좋은 출발을 시작한 토레스가 의욕으로 넘치는것은 명확한 목표가 있기때문이기도하다. 월드컵(2010년), EURO(2008년)에서 스페인대표로서 빅타이틀을 얻었던 그도 클럽레벨에서는 승리의 미주를 맛본적이없다. 훈장이라고 부를만한것이 있다고한다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시절에 경험했던 2부리그의 우승뿐이다.

「절 증명할 필요? 그런건 없습니다. 저는 단지 타이틀을 얻고싶을뿐이에요. 클럽에서도말이죠. 대표에서는 가장 중요한 두개의 트로피를 얻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이번에는 클럽에서 트로피를 손에 넣고싶습니다. 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얻을수있는 타이틀은 모두말이죠. 그중에서도 집착하는것이 챔피언스리그. 쭉 그것을 목표로해왔어요. 빅이어를 들어올린 제 모습을 빨리 보고싶어요」


출처 : 월드사커다이제스트 2011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