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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축구(Futbol Sudamerica)/브라질(Brazil)

신동 - Neymar


2011년 여름 칼치오메르카토에 있어서 최대어, 네이마르.
브라질의 예술적축구를 체현하는 존재로서 기대를 모으는 19세의 신동은
축구선수로서 무한의 가능성과 "크레이지함"을 감추고있다.

Text by Christian GIORDANO

5년정도 전까지 브라질에서 '작은 펠레'를 말한다면 호비뉴였다. 현재 그 칭호를 물려받은것이 네이마르다. 그에 대해 펠레는 "나보다 더 대단한 선수가 될 가능성을 감추고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마리오 발로텔리의 브라질판'이라는점이다.

Crazyboy

네이마르가 걸어왔던길은 호비뉴의 그것과 닮았다. 풋살출신으로 6세때 스카우트된것, 작은 세컨공격수라는점, 특기인 페다라다... 호비뉴는 상파울루주의 Sao Vincente 출신이지만 이들은 거의 교외출신이다. 2명을 발견했던것은 같은 에이전트였다. 아드로아우도 리카르도는 네이마르와 만났을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네이마르의 어머니는 '이아이는 축구선수가 될 운명입니다. 가족을 구해줄 아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확실히, 당시부터 기술은 특출난데가 있었어요."

호비뉴의 아버지는 술을 좋아했지만 네이마르의 아버지는 엄격한 프로테스탄트였고 과거 코리치바에서 오른쪽윙으로 활약했던 축구선수였다. 하지만 양친은 네이마르의 축구의 재능을 늘리는것은 가능했어도 공부를시키는것은 불가능했다. 네이마르는 상당히 빠른 시기에 학교졸업을 포기했다. 그는 14세때 아버지를 따라 마드리드로 여행을 떠났다. 레알 마드리드의 테스트를 받았다. 테스트는 합격했지만 네이마르는 20일의 이국생활동안 향수병에 걸려버렸고 브라질에서의 생활을 바꾸지못했다. 이렇게해서 마드리드는 최고의 재능을 놓쳐버린것이다.

네이마르는 그 재능으로 펠레와 비교됨과 동시에 악동스러운 장난기로 디에고 마라도나와도 비교받았다. 그의 자질이 발휘되었던것은 올해 1월에 개최된  U-20나미선수권이다. 네이마르는 첫경기 파라과이전에서 4골을 넣었고 그뿐만아니라 난투극까지 일으켰다. 7경기에서 9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 그의 재능을 알림과 동시에 '변두리의 악동'이라는 이미지도 정착시켰다.

플라멩구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레오 주니오르는 네이마르의 성격을 다음과같이 표현했다. "그의 11%는 무례하며, 36%는 무책임한데다 21%는 냉담하고 32%는 광기적이다." 네이마르의 아이돌은 보타포구에서 플레이하는 세바스티안 아브레우다. 모국 우루과이의 팬들에게 "엘 로코(크레이지)"라고 불리는 그는 작년의 월드컵 준준결승 가나전에서 카바지냐(칩킥으로 PK)를 넣었다. 올해 2월의 플루미넨세전, 그는 카바지냐를 차서 실패했지만 3분뒤에 직접 드리블로 PK를 얻어냈고 다시 카바지냐에 도전하며 이번에는 성공시켰다. 경기후 "2번연속으로 카바지냐라니 미쳤다."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렇게 말하는것은 제가 심판을 때렸을때 말해줘요. 2번연속 카바지냐는 "용기"죠."라고 답했다. 네이마르는 이 발언에 감명을 받은듯했다.


예술적축구의 산물

남아공월드컵 이후 셀레상의 감독이 된 마노 메네제스는 네이마르를 새로운 공격진의 축으로 삼았다. 8월 10일 미국전, 네이마르는 셀라상에서 가진 데뷔전에서 첫골을 기록했다. 다음날에 상파울루로 돌아오자 공항은 팬들로 가득차있었다. 촉망받는 미래를 가진 젊은이가 국민적 스타가 된 순간이다. 그는 미디어와 팬을 헤치고 차에 타지않으면안되었지만 왕같은 기분을 즐기는것도같았다. 작년의 월드컵에서 참패를 당했던 셀레상에게 분노하며 실망했던 브라질국민의 앞에서 네이마르는 "프치보 알테"(예술적축구)를 펼쳤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브라질스러운 축구스타일을 체현하는 존재. 네이마르는 둥가가 추진했던 수비편중의 축구에 대한 반대명제가 되었다.

작년봄의 시점에서 네이마르를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데려갈지 어떨지에 관한 논란이 들끓었다. 결과지상주의인 둥가는 그를 전력으로 보지않았지만 팬들은 반대로 생각했다. 월드컵 직전 산투스는 놀랄정도의 강력함을 자랑했다. 39경기에서 123골. 1경기평균 3골이라는 압도적인 파괴력을 무기로 리그를 제패했던것이다. 그곳에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임대로 돌아왔던 호비뉴가, 이번 여름 메르카토에서 주목받고있는 간수가 이 직후에 유럽으로 건너간 안드레가 그리고 "신동" 네이마르가 있었다.

네이마르는 29경기에서 27골이라는 수치를 남겼지만 그럼에도 그를 대표에 소집하지않은 둥가에게 사람들은 분노했고 월드컵 전에는 14000명이 네이마르의 남아공행을 요구하는 탄원서에 서명했다. 그곳에는 펠레와 호마리우도 사인했다. 하지만 둥가는 '국제경험부족'을 이유로  그를 소집하지않았던것이다. 이때 사람들이 떠올렸던것은 1978년에 발군의 재능을 보여줬음에도불구하고 아르헨티나월드컵에 소집되지못했던 당시 17세의 마라도나다. 지금 브라질사람들은 네이마르를 셀레상부활의 상징으로 보기시작했다.


유럽도전

3월 27일, 네이마르는 런던에서 벌어진 스코틀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2골을 기록. 이 도피에타는 칼치오메르카토에 있어서 그의 가치를 급상승시켰다. 이때 런던에 유벤투스의 관계자가 있었던것은 우연은 아닐것이다. 그 이후 인테르와 맨체스터 유나이트드, 첼시가 산투스에게 접촉했다고한다. 현재 네이마르의 소유권 50%는 산투스가, 45%는 이적 에이전트가, 5%를 네이마르 본인과 가족이 갖고있다. 최고급의 재능이지만 유럽에서의 실적이 전혀없는 네이마르의 시장가치를 어떻게 설정해야하는가는 어렵다. 영입다툼이 치열해지는것은 틀림없지만 내년의 올림픽까지 그가 산투스에 남아서 플레이할것이라고 생각하기는어렵다. 물론 3년뒤의 월드컵까지 브라질에 남는일같은건 있을수없는 이야기다.

그의 사정을 재차 어렵게만는것이 그의 문제아기질이다. 발군의 테크닉과 준민한 움직임, 오른발도 양발도 손색없이 사용할수있고 넓은 시야도 갖고있는한편 정신적인면의 미숙함 또한 확실하다. 도발당하면 반드시 반응하며 게다가 기다리고있는것만이 아니라 반박하는 타입이다. 작년 브라질선수권. 직접 드리블돌파로 PK를 얻었을때 감독이 다른 선수를 키커로 지명했다. 자신이 찰거라고 생각했던 네이마르는 이 지시에 불복했고 볼을 들고 주변에 폭언을 퍼부었다. 이런 행위가 허용될리없다.  도리발감독은 다음 경기에서 네이마르를 제외했고  그다음경기에서도 제외할것을 선언했다. 하지만 제외된것은 도리발이었다. 클럽은 네이마르를 처벌하지않았고 감독을 해임했던것이다. 도리발은 파울리스타리그우승과 코파 드 브라질 2관왕을 달성했지만 클럽은 돌아보지도않았다.

올해 코파리베르타도레스 경기에서는 이미 옐로카드를 1장 받았음에도불구하고 골을 넣은뒤 스탠드로 뛰어들어가서 자신의 가면을 썼다. 이 행위로 2번째 옐로카드를 받으며 퇴장. 다음경기부터 감독이 될 예정인 무리시 하말류가 스탠드에서 관전하는 와중에 사건을 일으켰다.

1992년생인 네이마르는 아직  19세가 되었을뿐이고 프로로서의 커리어는 겨우 3년밖에되지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이미 7명의 감독의 아래에서 플레이했다. 놀라지마라, 그는 이중에 2명의 목을 잘랐던것이다. 현재 감독인 하말류는 네이마르를 성장시키기위해 감독의 자리에 앉았던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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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레티코 고이아니엔세의 레오 시모에스감독은 벤치에서 본 네이마르의 인상을 이렇게 표현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내 오랜 축구인생에서 네이마르정도로 거칠고 세련되지못하며 무례한 선수는 본적이 없었다. 주의하지않으면안된다. 지금 우리가 키우고있는것은 "괴물"인것이다". 이번 여름 네이마르가 유럽에 상륙할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인테르 및 유베의 수뇌진은 이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할것이다. 그는 무한한 가능성을 감추고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살리기위해서는 그를 컨트롤할수있을만한 "교육자"를 찾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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